공약과 정책이 충돌하다: 이재명 정부의 딜레마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로 서울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노후 도심 주거 환경 개선과 도심 주택 공급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집권 1년여가 지난 2026년 6월 현재, 정작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는 공약과 정반대의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지난해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강화한 '이주비 대출 규제'가 도화선이다. 1주택자의 경우 LTV 40%에 최대 6억 원 한도가 적용되고, 다주택자(1+1 분양 선택 조합원 포함)는 LTV 0%—사실상 이주비 대출 전액 차단—가 적용되면서 서울 도심 정비사업 현장이 사실상 멈춰 서기 시작했다. 이주비 마련에 실패한 조합원들이 이주를 거부하거나 사업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1 분양의 역설: 소규모 집주인을 덮친 다주택자 낙인
가장 논란이 되는 지점은 '1+1 분양' 조합원 문제다. 1+1 분양은 원칙적으로 기존 주택 대신 새 아파트 2가구를 받는 제도로, 소형·노후 주택 보유자가 새 단지에서 거주 공간을 확보하는 수단이었다. 문제는 이 경우 이주 시점에 기존 주택이 아직 철거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2주택 보유'로 해석해 다주택자 대출 규제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경우 조합원 중 다주택자 비율이 40~6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1+1 분양 신청자까지 다주택자로 묶이면 실질적으로 이주비 대출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조합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이주를 앞둔 43개 사업장 가운데 39곳(3만1천 가구)이 이주비 대출 규제로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 부담의 실상: 연 4,500만 원 이자를 조합원이 감당하라?
기본 이주비 한도 6억 원이 적용된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장의 실제 이주비 수요에는 크게 못 미친다.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핵심 재건축 지역에서는 조합원 1인당 실질 이주비 수요가 10억 원을 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경우 초과분은 고금리 '추가 이주비' 대출이나 개인 자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 항목 | 기본 이주비 | 추가 이주비 | 연간 이자 |
|---|---|---|---|
| 대출 금액 | 6억 원 (LTV 40% 한도) | 4억 원 (시중 신용대출) | — |
| 적용 금리 | 3.5% | 6.0% | — |
| 연 이자 | 2,100만 원 | 2,400만 원 | 4,500만 원 |
연간 금융 비용만 4,500만 원에 달하는 셈이다. 노후 단지에 거주하는 중·고령 실수요자 조합원 입장에서 이는 사실상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건설사에 의존하거나, 사업을 포기하거나, 소송을 택하는 세 갈래 길만 남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방선거가 바꿀 수 있을까: 서울시장 후보들의 공약 비교
6월 3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가 이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주요 후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정비사업 정상화 방안을 내세웠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비사업 절차 간소화와 공급 확대에는 한목소리를 냈다는 점이 이번 선거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주비 대출 규제는 서울시 권한이 아닌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의 소관 사항이다. 새로운 서울시장이 탄생해도 이 규제를 직접 풀 권한은 없다. 결국 중앙 정부—즉 이재명 정부—가 스스로 정책 방향을 수정하지 않는 한, 현장의 교착 상태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공급 절벽과 전세 불안의 악순환
재건축·재개발이 막히면 중장기 주택 공급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도심 정비사업은 서울 신규 주택 공급의 핵심 경로다. 현재 예정된 39개 사업장 3만1천 가구가 2년 이상 지연될 경우, 2028~2030년 입주 물량에 직격탄이 된다. 이는 이미 타이트한 서울 전세 시장을 더욱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상황의 아이러니는 이렇다.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을 죄었더니 오히려 공급이 줄어들고, 공급이 줄어드니 중장기 집값이 다시 상승 압력을 받는 역설이다.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가 병행되어야 하는데, 현 정책은 수요 억제에만 집중하면서 공급 경로를 스스로 막는 모순적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실수요자·투자자 시사점: 지금 무엇을 봐야 하는가
- 이주비 규제 완화 여부를 모니터링하라: 정부가 이주비 대출 규제를 정비사업에 한해 예외 처리하거나 한도를 상향할 경우, 이주 예정 사업장의 사업 속도가 급격히 빨라질 수 있다. 관련 발표를 선제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핵심이다.
- 1+1 분양 조합원 문제 해결이 선행 조건: 1+1 분양 선택 조합원을 다주택자로 분류하는 현행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강남권 핵심 사업장 상당수는 지속적인 지연 리스크를 안고 있다.
- 관리처분인가 이후 구역을 주목하라: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이주 단계에 들어선 구역은 규제 완화 시 가장 빠른 수혜를 받는다. 반대로 사업 초기 구역은 정책 불확실성에 더 오래 노출된다.
- 건설사 연대보증의 한계를 인지하라: 일부 사업장이 시공사의 이주비 보증을 통해 문제를 우회하고 있으나, 이는 건설사 재무 부담을 가중시켜 사업 안정성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
- 지방선거 결과와 새 서울시장의 행보를 추적하라: 새 서울시장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중앙 정부에 압박할 경우 정책 변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선거 결과 이후 중앙-지방 간 정책 협의 동향이 중요한 시그널이 된다.
결론: 공약의 진정성을 입증할 시험대
이재명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공약은 아직 검증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집값 안정을 위한 대출 규제라는 단기 목표와, 도심 주택 공급 확충이라는 중장기 목표 사이에서 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두 목표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우선시할 것인지가 실제 정책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현장에서는 이미 답이 나오고 있다. 3만1천 가구의 이주가 멈춰 서고, 공급 절벽의 예고음이 울리는 지금, 정부의 다음 행보가 향후 서울 주택 시장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이주비 대출 규제의 정비사업 예외 적용—이것이 이재명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공약을 이행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