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의도와 시장 반응 사이의 깊은 골
2026년 5월 9일, 3년 넘게 유예돼 온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가 공식 재개됐다. 규제지역 내 2주택자에게는 기본세율 최고 45%에 20%포인트, 3주택 이상은 30%포인트가 추가 부과된다. 이론적으로는 다주택자가 집을 팔게 만들어 시장에 공급을 늘리고 집값을 안정시키는 정책이다. 그러나 시장은 정반대로 반응했다.
중과 재개 나흘 만에 서울 아파트 매물 수는 6만 8,000건에서 6만 3,000건으로 약 5,000건(7.4%)이 급감했다. 강동구(-8.9%), 성북구(-6.2%), 강서구(-5.4%) 등 이른바 '비강남권 준핵심 지역'에서 매물 회수가 두드러졌다. 세율이 높을수록 집을 팔 동기가 줄어든다는, 경제학 교과서가 수십 년째 설명해 온 현상이 2026년 서울에서 또 한번 반복된 것이다.
'이중 잠금' 구조: 팔지도, 사지도 못하는 시장
현재 서울 부동산 시장에는 두 겹의 잠금장치가 걸려 있다. 첫 번째는 '매도 잠금'이다. 다주택자는 실효세율 82.5%라는 세금 장벽 앞에서 차라리 보유를 선택한다. 지금 팔아봐야 남는 게 없거나 오히려 손해라는 계산이다. 두 번째는 '매수 잠금'이다. 1주택 실수요자는 15억 원을 넘어선 평균 시세 앞에서, 대출한도 규제(DSR·LTV)와 고금리의 이중 압박 속에 진입을 포기한다.
그 결과 시장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1층 매물, 세입자가 있는 '세 낀 물건', 교통 접근성이 낮은 외곽 단지들이다. 인기 매물은 이미 사라졌고, 비인기 매물만 호가를 유지한 채 쌓여간다. 거래는 없는데 가격은 하락하지 않는 이 현상을 전문가들은 '가격 경직성 강화'라고 부른다. 세금 정책이 시장을 단순히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동결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전세 시장: 정책 실패의 2차 파장
매매 시장의 매물 잠김은 필연적으로 전·월세 시장으로 파급된다. 다주택자가 보유 주택을 처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임대 물량의 성격이 바뀐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놓지 못하는 집은 전세나 월세로 돌아간다. 문제는 그 선택지가 이전보다 훨씬 나빠진다는 점이다. 세금 부담이 높아진 집주인은 그 비용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려 한다. 전세 보증금을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2026년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66.8%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 입주 예정 물량은 전년 대비 56% 감소한 1만 6,262가구에 그칠 전망이다. 공급 절벽과 세금 전가가 결합하면서 서민 임차 시장은 2017~2018년 이후 가장 혹독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정책이 억누르려 했던 집값 상승은 막지 못한 채, 세입자만 더 힘들어지는 역설이다.
세금 정책의 근본적 한계: 공급 없는 수요 억압
한국 부동산 정책의 가장 반복적인 오류는 수요 측면만 억압하고 공급 측면을 방치한다는 점이다. 세금을 올리면 투기 수요가 빠진다는 이론은 그 자체로는 맞다. 그러나 그 효과가 발현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시장에 대체 공급이 있어야 한다. 둘째, 세금 부담자가 시장 참여자 중 소수여야 한다.
한국, 특히 서울은 두 조건 모두 충족하지 않는다. 서울 내 신규 공급 가능 택지는 사실상 소진됐고, 재건축·재개발 속도는 행정·규제 지연으로 2~3년 이상 지체되고 있다. 다주택자는 소수 '투기꾼'이 아니라 임대 공급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사실상의 민간 임대 시장 주체다. 이들을 세금으로 쫓아내면 공급이 줄어든다. 집값 상승의 원인을 수요 과잉에서만 찾고, 공급 제약이라는 구조적 뿌리를 외면하는 한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주택자의 포트폴리오 전략 변화: 시장에 주는 시사점
정책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당연히 시장 참여자들이다. 양도세 중과 재개 이후 다주택자들의 행동 양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핵심 자산 집중'이다. 강남 3구·용산·마포 등 비규제·실수요 집중 지역 주택은 어떤 세금 압박에도 장기 보유한다. 둘째는 '외곽 정리'다. 세금 부담 대비 수익성이 낮은 15억 원 이하 중저가·외곽 물건은 양도세 부담을 감수하거나 증여로 돌리는 방식으로 정리한다. 셋째는 '임대 전환'이다. 매도도 증여도 어려운 물건은 월세 전환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한다.
이 세 가지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면 서울 부동산 시장은 '핵심 지역 초고가화 + 외곽 보합 or 약세 + 임대 시장 월세화'라는 삼중 구조로 재편된다. 2026년 하반기 시장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이 구조적 분화다.
정책 제언: 시장과 싸우지 말고,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세금은 시장을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다. 세금은 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의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는 수단이다. 집값을 잡으려면 집을 더 지어야 한다. 도심 고밀 개발, 재건축 패스트트랙, 공공임대 공급 확대, 3기 신도시 조기 입주가 유일한 장기 해법이다. 세금을 올릴수록 '팔지 않겠다'는 시장의 반응이 강화된다는 것, 2026년 5월은 그 교훈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중과세 유예의 현실을 인정하고, 매물 잠김 해소를 위한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장기보유특별공제 확대, 일정 요건 충족 시 중과 제외 등의 방향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야 한다. 시장을 억압하는 정책에서, 시장을 만들어 가는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수요자·투자자 시사점
- 매물 감소로 서울 핵심 지역 매수 경쟁이 재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 진입 타이밍보다 '어디에 살 것인가'를 먼저 결정하라.
- 전세 물량 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다 — 2026년 하반기 전세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다면 지금 당장 대안 주거 전략을 세워야 한다.
- 비규제 지역·실수요 밀집 지역(마포·성동·동작 등)은 매물 잠김의 반사 수혜를 받을 수 있다 — 중장기 투자 관점에서 주목할 권역이다.
- 다주택자는 '보유 vs. 증여 vs. 매도'를 세무 전문가와 함께 재검토해야 한다 — 82.5% 실효세율은 매도보다 보유가 유리한 수학을 만들어낸다.
- 월세 시장 강세는 구조적 추세다 — 도심 소형 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의 월세 수익률을 재평가할 시점이다.
- 정책 변수가 많다 — 6월 지방선거 이후 정책 완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고, 유연한 포트폴리오 전략을 유지하라.
2026년 한국 부동산은 '시장이 정부를 이기는' 국면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세금이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수십 년의 역사가 증명한다.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고, 시장의 신호를 읽고 그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투자자와 실수요자 모두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전략이다.